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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리뷰 : 우리가 분류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 (결말)

누군가의 삶이 궁금할 때는 언제일까.

 

 

높은 확률로 나의 삶에 변화가 필요할 때 혹은 방향성과 등대가 필요할 때가 아닐까 싶다. 책의 저자인 룰루 밀러는 사랑을 잃은 때, 그것으로부터의 탈피 혹은 변화가 필요한 시점에 데이비드 스타 조던(David Starr Jordan)을 우연히 발견하였다. 타인의 삶을 마주함으로 저자는 인간이라는 종을 이해할 수 있길 바랐을지도 모르겠다. 데이비드가 가진 도전적인 모습들은—물고기 피부에 이름을 바로 꿰매 붙인 일들을 포함하여—저자에게 있어 더욱 크게 다가왔으리라고 생각된다.

 

 

책은 프롤로그를 제외하고 총 13개의 챕터로 이루어져있다. 1~5 챕터는 데이비드 조던의 연대기가 녹아져 있는데 데이비드의 집안 배경과 더불어 그가 어떻게 '물고기'라는 어류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와 그것을 과학적으로 '분류'하기 위하여 보내온 지난한 과거들을 엿볼 수 있다. 저자에 의하면 1891년 스탠퍼드대학의 초대 학장으로 취임한 데이비드는 그를 학장으로 만든 스탠퍼드 부부 덕분에 연구활동에 더욱 매진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제인 스탠퍼드(아내)와는 많은 마찰이 있었지만 말이다. 이 부부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스탠퍼드 대학교를 설립한 이들이다. 해당 대학교 부지는 본래 릴런드 스탠퍼드가 운영하던 큰 목장의 자리였다고 하는데, 광활하게 자연과 맞닿아있는 그 땅에서 데이비드는 말 그대로 마음껏 연구를 추진했겠구나 싶었다.

 

이렇듯 아이디어를 상상의 영역에서 세상의 영역으로 끌어오는 운송 수단인
이름 자체는 엄청난 힘을 갖고 있다. p.98

 

이름 하니, 불현듯 김춘수 시인의 "꽃"이 생각난다.

 

우리가 분류하고 명명하는 것들은 과연 정확한가. 엄청난 힘을 가진 이름은 과연 대표성을 지니고 있는가. 이러한 질문을 되뇌게 만드는 것이 저자가 책을 집필한 이유였을지도 모르겠다. 룰루 밀러가 데이비드 조던의 삶을 통하여 끝내하고 싶었던 말들은 챕터 8부터 시작된다고 봐도 무방하다. 사실 데이비드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책을 접한다면 엄청 대단한 사람인가 싶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생애를 다시금 되짚어보는 저자의 흐름을 따라가 보면 데이비드는 그저 긍정적 착각으로 삶의 불행을 막아내며 살아온 '자기기만'에 빠진 인물일 뿐이다.

 

흥미로웠던 구절은 그러한 자기기만, 자기고양, 긍정적 착각에 대한 수많은 논문과 연구결과들을 다시금 인용한 부분이었는데, 특히 자기 고양(self-enhancement)에 대하여 "과도한 자신감을 보이는 사람들은 본인의 과시가 타인을 소외시키는 결과를 만들어내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알아차리지 못하며, 공동체 안에서 좋은 평판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많은 혜택을 놓친다"라고 언급하였다. 또한 "긍정적 착각을 많이 하는 학생들이 단기적으로는 행복하나 장기적으로 평온 지수가 급감한다는 점"을 기술하기도 한다. 이러한 인용은 데이비드가 자기기만에 빠져 있었던 사람인지를 설명하기 위한 초석인데, 그가 가진 대단한 업적에 비례하듯 그의 잘못된 과학적 철학 즉, '우생학'이 사실상 책의 실질적인 논점의 시작이라 볼 수 있다.

 

우생학(eugenics)


 

 

우생학은 유전 법칙을 응용하여 인간 종족의 개선을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알려진다. 미국은 1907년 우생학적 강제 불임화를 법제화하는 우생법안을 채택하여 전세계 최초로 우생학을 합법화한 나라가 되었다. 이후 오랜 기간 캘리포니아 주를 포함하여 버지니아, 노스 캐롤라이나에서 강제 불임시술을 자행하였고, 그 대상자는 알코올 중독자, 정신질환자, 성적으로 문란한 여성들이었다. 그리하여 저자는 다윈이 끊임없이 주장한 "자연에서 생물의 지위를 매기는 단 하나의 방법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데이비드의 자기기만함과 오만함 때문에 보지 못했으며, 분기학자들의 연구를 바탕으로 '어류'안에 포함된 다양한 생물들을 꼼꼼하게 살펴본다면 어류로 분기하기에 어렵다는 것, 그러므로 물고기는 실질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이름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껏 잘못 명명되어 온 혹은 인간의 잘못된 관점으로 분류되어 온 어떠한 신념들을 정면적으로 비판하며 룰루 또한 자신이 놓친 물고기가 무엇이었는지 그것을 다시금 되찾으며 마무리된다.

 

 

과학의 오류

 

 

맞다. 나는 저자의 이러한 관점이 그리고 과학의 오류를 지적한 것에 일부분 동의한다. 과학적 '사실'이라는 개념 아래 혹은 '보편'적 사실이라는 프레임 안에서 실질적으로 명명되어지고 분류된 많은 것들이 과연 얼마나 정확한가에 대해 우리는 아무도 그 정답을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녀의 글에서 일부분은 동의할 수가 없다. 아이디어를 세상의 영역에 끌어오는 작명의 힘은 대단하나, 그것은 그저 인간들이 무언가를 정의내리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그리고 과학은 사실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언제든 뒤집힐 수 있는 오류 투성이라는 것도 놓쳐선 안된다. 분기학 역시 계통학의 한 방법론적 연구 분야일 뿐 그것이 우생학에 열중하여 자연을 명명하는 행위를 했던 한 연구자의 연구 결과를 전부 뒤집을 수 있는 완벽하고 사실적인 학문 분야라고도 할 수 없는 것이다. 물고기는 존재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다윈의 진화론이 가장 정확한 과학적 접근이라면, 계속해서 진화하는 수 많은 생물들의 상호 관계와 그것을 통하여 진화해 나가는 생물들의 변화에 따라 어느 시점엔가는 분기학조차 잘못된 계통학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기존의 프레임과 틀에서 벗어나 사고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바람직하고, 그리하여 나 또한 어떤 틀과 사고로 세상을 보고 있었는지 숨겨진 자기 오만함은 없었는가 성찰할 순 있었으나 다소 아쉬움이 남는 책이었다.